식사라는 건 참 일상적이고 규칙적이다. 그래서 특별함을 잘 모르고 살지만 한편으로는 삶에 있어서 가장 특별하고 특징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있는 삶인지 아닌지에 따라 삶의 질이 나뉘는 것도 같다.
나는 핀란드에서 6개월 정도 살다온 경험이 있다. 카모메 식당을 보며 새삼 '아, 핀란드가 이랬지.' 느꼈다. 내가 핀란드를 갔던 것도 이런 삶을 동경해서였다. 물론 이상과 현실이 100% 맞았던 건 아니었다. 핀란드 가기 전에 이 영화를 보지 못한 게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얘기하다보니 다시 핀란드 가고 싶다. 진짜 특별할 거 없는 나라인데 왠지 정이 가는 나라였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영화는 참 차분하고 잘 정돈됐다. 그래서 지루할까 싶지만 경쾌하면서 또 명쾌하기까지 하다.
내용은 정말 별거 없다. 사치에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음식점을 차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은 오지 않는다. 그러던 중 첫 손님으로 토미라는 젊은 핀란드 남성이 가게를 찾아와 커피를 주문한다. 이를 계기로 토미는 이 가게에서 매일 커피를 무료로 마시는 손님이 된다. 일본의 문화를 좋아하는 토미는 사치에에게 만화 주제곡을 묻지만 기억이 날 듯 나지 않는다. 머릿속에 노랫말이 아른거리는 사치에는 서점에서 한 일본인, 미도리에게 그 만화 주제곡을 아느냐고 대뜸 물어버린다. 이를 계기로 미도리는 사치에와 함께 지내게 된다. 그 뒤로도 짐을 잃어버린 여자, 남편을 잃은 여자 등이 등장하면서 일상적인 일들이 반복된다.
'따로 또 같이' 인생이 이렇지 않을까? 영화 속 등장인물은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인물이 아니다. 어쩌다 만나게 됐고 어쩌다 함께하게 됐다. 만남을 애써 부정하지도 않고 이별을 애써 슬퍼하지도 않는다. 흘러가는 대로 그냥 그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한다. 자신의 삶을 산다. 특히 주인공인 사치에 씨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참 부러웠다. 덤덤하면서도 따뜻한데 그 속에는 확고함이 보인다.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 내공이 강한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꿈꾸는 삶이 바로 이런 것이다. 확신할 수 있다. 난 분명 일상적이고 따뜻한 삶을 꿈꾼다. 거창한 걸 바라는 나이는 지난 듯하다. 사소한 행복으로 가득한, 그것이 행복이라고 느끼지도 못할 그런 일상적인 행복이 가득한 삶을 살고 싶다. 어쩌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큰 고민에 가려 행복이라 느끼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따뜻한 밥 한 끼 같은 영화이다. 고급스럽고 값비싼 밥 한 끼는 분명 아니다. 고생스러운 하루를 보낸 후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껏 차린 집밥이다. 소박하지만 특별하고 돌아서면 늘 그리운 그런 특별한 밥.
우리나라 영화는 대게 색깔이 분명하다. 폭력적이거나 웃기거나 무섭다거나 야하거나 하는 특색이 존재하는 영화가 많은 것 같다. 색이 없는 영화가 터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나는 터지지 않는 잔잔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영화에도 물 같은 이런 영화가 많았으면 좋겠다. 지친 하루 끝에 이런 영화라면 내일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할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쓸데없이 '다시 핀란드에 가면 이런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도 해봤다. 사치에는 싫어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싫어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삶,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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